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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주간 마무리

끊이지 않는 열정 갖기

나의 열정은 유통기한이 짧은 편이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꾸준함을 보통 '과제 집착력' 이라고 하는데, 이는 영재 판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어렸을 적에는 하나에 몰두하는 것이 많이 쉬웠었고 그 때문에 영재교육 비슷한 것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30대가 넘어서 보니까 주변에는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한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재정 관리하랴, 몸 관리하랴, 또 괜히 취미 활동은 열심히 하고 싶고, 남들 가본 핫플은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두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어른이 되어서 영재가 되고싶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한가지 일에 몰두하던 내 모습이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몇날며칠 수학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기억들, 그림 하나 제대로 그려보겠다고 방에서 붓을 쥐고 이박삼일 꼬박 새운 기억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생스러웠지만 또 즐거웠던 기억이었다. 이런 경험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했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더라. 아무렴 세상만사 고민들 하지 않을 때가 좋을 때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영재로 칭송받는 다는 그 환경이 그리웠던 것 아닐까?

어쨋든 현실은 상황이 다르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이상 미덕이 아닌 나이가 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멀티태스킹을 수행해야 한다. 회사 미팅에 가서 은행업무를 챙겨야 하고, 운동을 하면서 저녁 장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녹록지 않다.

이렇게 넘치는 고민들이 머리속에 가득한 사회인들에게는 어느 한가지에 열정을 갖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 안에 속아 무턱대고 시작하고, 절반도 못가 흐느적 거리는게 씁쓸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꾸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운동을 시작한지 약 반년이 지나고 있는데, 처음 시작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운동 가는 것조차 벅차 일주일에 5번 가던 운동을 주3회로 줄이고 있다. 운동 시간도 처음에는 1시간 반이었지만 지금은 1시간이 채 되질 않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블로그는, 꾸준한 내 자신을 다짐하며 '꾸준한 블로그'로 이름을 지었었지만, 10개월이 지나고서야 2번째 포스팅을 하고 있다. 연초에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계속 미뤄져 가고 있고, 빡세게 준비해보고 싶었던 퍼스널 브랜딩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슬럼프가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김없이 슬럼프를 받아들이는 내가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 새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만큼, 슬럼프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다.
세상 뜬금 없게도, 슬럼프에 대한 극복은 우리집 화장실에서 찾았다. 옛날 아파트나 주택, 평범한 집에서는 물을 동시에 쓰면 수압이 낮아진다. 수압만 낮아지는 것 뿐 만 아니라 물의 온도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어렸을때 평범한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알텐데, 나는 어렸을때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엄마에게 항상 당부했었다. 샤워하러 들어가니 물 쓰지 말아달라고. 깜빡하고 엄마가 물을 쓰는 날에는 패륜아처럼 짜증을 내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신축 빌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다른데에서 물을 쓴다고 해도 수압은 낮아질지언정 온도는 내려가지 않으니까.

그렇다. 수압은 낮아질지언정 물의 온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엊그제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미리 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샤워기를 켜놓고, 작은 볼일을 봤다. 볼일을 다 보고 물을 내렸는데, 물의 온도에는 변함이 없더라. 슬럼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가진 않았다) 어쩜 우리의 열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이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해내고싶어하는 열망을 물의 온도로 비유하자면, 주변에 갖가지 힘든 상황이 닥쳐도, 당장에 수압은 낮아지겠지만, 나 자신에 들어있는 열망은 변함이 없다는 것. 우리가 세상만사 고민거리가 들이닥쳐도 '이 또한 지나가리' 라 생각하며, 변함없이 뜨거운 온도의 열망을 기억하는 것이 나에겐 힘이 되었다.

우리는 현대인이기 때문에 한가지 집중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다고 해서, 나의 마음 속 열정이 식는다고 볼 수는 없다. 당장 내가 운동을 몇번 빠졌다고, 내 개인 프로젝트가 딜레이 되었다고, 내 열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냥 삶이 힘들었을 뿐,
열정의 온도는 항상 뜨겁다.